본문 바로가기

INSIGHT

[이알트] 탄소국경세, 국제무역질서의 새로운 변수

전 세계에 기후변화 위기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EU는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발표했는데요. 지난 6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기후 기본법’을 제정한 데 이어, 7월 14일에는 12개의 구체적인 법안을 담은 탄소중립 정책 패키지 ‘피트 포 55(FIT FOR 55)’까지 공개했습니다.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는 이 법안의 핵심인데요. 이에 풍력·태양광과 전기차, 수소 산업 관련주가 상승세를 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EU는 왜 탄소에 세금을 매길까?

피트 포 55는 유럽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수준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을 말합니다.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2035년부터 휘발유나 디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량의 판매가 사실상 금지됩니다. 둘째, EU 회원국으로 수입되는 제품 중 현지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제품에 대하여 환경 비용을 물리는 '탄소 국경세(CBAM)'가 도입됩니다. 이에 따라 EU 내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품목을 수입하려면 탄소 국경세 인증서를 추가로 구매해야 하는데요. 탄소 국경세는 매주 경매된 EU 내 탄소배출권의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될 계획입니다.

피트 포 55는 유럽 외산 철강과 알루미늄, 시멘트와 전기, 비료 등에 적용되며 2025년까지 과도기를 둔 뒤 2026년부터 전면 도입할 예정인데요. EU의 탄소배출권 거래제인 ETS와 CBAM 인증서를 연동해 구매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운영한다고 합니다. 수입업자는 매년 5월까지 전년도 수입 수량과 탄소배출량에 해당하는 CBAM 인증서를 구매해 의무적으로 정부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납부하게 되죠. 단, 아이슬란드와 리히텐슈타인, 노르웨이와 스위스 등 EFTA(유럽자유무역연합) 국가와 EU 역외 국가는 적용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피트 포 55는 일종의 관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것은 EU의 ‘우리만 잘하면 뭐하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는데요. 유럽이 아무리 노력해도 규제가 느슨한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저가 제품을 소비하면 결국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법은 EU라는 경제 단위 내의 제품 경쟁력을 보호하는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 규제를 지키지 않으면 그만큼 제품의 생산 원가가 줄어들게 마련이고, 이로 인해 탄소 배출 규제가 상대적으로 강한 EU에서 생산한 상품이 가격에서 밀려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잰걸음으로 전진중인 미국

유럽이 먼저 치고 나간 만큼, 다른 나라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민주당 역시 지난 7월 14일 한화 3992조 원 규모의 친환경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탄소 조정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포함했습니다.

2021년 3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바이든 정부 2021년 무역정책 아젠다(Trade Policy Agenda)에 따르면,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국제거래시스템을 도입하고 정책 수립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합리적인 탄소국경조정 정책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아직 연방정부 차원의 별도 탄소국경세 관련 법안은 없지만, 주 정부의 움직임은 누구보다 빠릅니다. 캘리포니아는 1톤당 18달러 수준의 탄소배출거래제를 이미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북동부 11개 주가 참여하는 지역온실가스이니셔티브(Regional Greenhouse Gas Initiative)는 전기를 발생할 때 배출되는 가스에 1톤당 6달러를 책정하고 있습니다. 

 

높아지는 탄소국경 허들, 그 충격은? 

EU와 미국의 탄소국경세 도입 움직임에 한국 주요 기관과 단체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국에서 이미 유사한 탄소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청구서 성격의 CBAM을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내용은 담은 서한을 EU의 우르술라 폰 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그린딜 담당 수석부 집행위원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와 항공 운송 관련 주식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철강과 정유, 석유화학 업계의 지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지난 8월 4일 이에 대한 항의 서한을 EU에 직접 보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죠.

글로벌 컨설팅 회사 ‘EY한영’이 2021년 1월 발표한 보고서 ‘기후변화 규제가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분석’에 따르면, EU의 CBAM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2023년 시점을 기준으로 한국이 유럽과 미국, 중국을 상대로 지불해야 하는 탄소국경세는 6,100억원에 달합니다.

2030년에는 그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1조 8,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7월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주요국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탄소국경세를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EU와 미국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때 한국의 수출은 연간 1.1% 감소하게 되죠.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부품 관련과 반도체 메모리, 석유화학과 철강 분야로 온실가스를 상당량 내뿜는 업종들입니다. 전체 생산 전력에서 10% 미만을 차지하는 재생 에너지를 확대하는 등 상황을 개선하려면, 전력 인프라와 기존 에너지원 대비 효율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탄소국경 넘을 수 있는 ESG 체력 만들어야

코앞으로 다가온 탄소국경세. 아직 현실화까지 5년도 남지 않은 만큼, 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셸터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탄소배출을 줄여 얻을 수 있는 배출권을 적절히 거래해 기업의 자산으로 삼는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ETS)’ 등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결국 모든 리스크를 없애려면 탄소 배출 자체를 줄일 수 있도록 사업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화력 발전 등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고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생산 공정과 설비를 바꿔 나가야겠죠. 또한, 기업의 특성에 맞는 ESG 정보를 공시하고 이니셔티브 참여를 확대해 탄소국경을 뛰어넘는 ESG 체력을 갖췄을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