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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시사하는 모빌리티의 미래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며 자동차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차량 생산에 차질이 생기며 출고일을 장담할 수 없게 됐는데요. 신차 대신 중고차를 택하는 이들이 늘며 일부 모델의 경우 중고차가 신차 가격을 뛰어넘는 가격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중고차 매매 브랜드의 조사 결과, 지난 5월 중고차 거래량 상위 10개 차종의 평균 시세는 전월 대비 6.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미국 역시 중고차 시세가 급등했죠. 지난 5월 미국의 중고차 가격은 전달 대비 7.3% 올랐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7%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차량용 반도체 수요와 공급이 어긋나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반도체가 자취를 감춘 이유?

지난해 코로나 19의 여파로 자동차 수요가 급감했습니다. 당분간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본 완성차 업체들은 반도체 주문을 대거 축소했죠. 이에 따라 반도체 제조사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 비중을 줄이고 통신과 IT용 반도체 생산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자동차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완성차 업체가 확보한 반도체 칩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며 추가 반도체 칩 확보가 시급해진 것이죠.

이 상황이 난감한 건 반도체 제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월 미국 텍사스주에 기록적인 한파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전력 공급이 끊기며 삼성전자 등 다수의 반도체 생산업체가 공장 가동을 멈췄습니다. 또 한 달 뒤엔 차량용 반도체 시장 2위를 차지한 르네사스의 일본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생산 라인이 줄어든 만큼 예년과 같은 양의 반도체 생산을 기대할 수 없게 됐는데요. 통신과 IT용 반도체 주문도 밀려 있어 차량용 반도체를 우선 생산할 수 없는 노릇이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에즈 운하까지 막히며 반도체 공급망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원인이 복합 작용하여 지금의 반도체 품귀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수익성 떨어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이 가장 큰 반도체는 전장 시스템을 제어하는 MCU(Micro Control Unit)입니다. 차 한 대당 평균 200개의 MCU가 탑재되는데요.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의 경우 그보다 2~3배 많은 MCU가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쓸모가 많은 만큼 MCU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반도체 제조사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합니다.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차량용 반도체는 대부분 8인치 웨이퍼에서 생산됩니다. 8인치 웨이퍼는 원판이 작아 동일 면적 대비 생산 가능한 반도체 숫자에 한계가 있죠. 또 12인치 웨이퍼에서 만든 반도체보다 부가가치가 낮습니다. 12인치 웨이퍼가 쓰이는 모바일 AP의 평균 판매가격이 10달러 이상인 데 반해 차량용 MCU의 평균 판매가격은 1달러 대로 알려졌는데요. 교체 주기마저 10년 이상으로 길어 사실상 꾸준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리스크를 감소하고 반도체 증설을 추진한다고 해도 생산까진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노광장비 조달에만 6개월 이상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정이 더욱 열악합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약 20%대로 노광장비의 경우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데요. 타국보다 장비 조달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내년도에 반도체 공급이 정상화된다면 기업은 큰 손실을 떠안아야 합니다. 반도체 수급난이 일시적이라고 보는 입장에선 무리하게 투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로 인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없는 것이죠.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때!

그러나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0년 450억 달러에서 2040년 1,750억 달러로 크게 성장할 전망입니다. 당장의 생산성과 수익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나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외면할 수 없는 셈이죠.

최근 미국과 독일, 일본 정부는 반도체 제조사를 상대로 차량용 반도체 증산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따라 제조사가 증산 검토에 나선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반도체 강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이지만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선 점유율이 2.3%에 불과합니다. 국내 완성차 업체 모두 MCU를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죠.

전문가들은 증산 후에도 반도체 품귀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지금 우리 기업에게 필요한 건 장기적인 관점의 대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