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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은하수를 여행할 히치하이커를 위한 자동차

광활한 우주에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행성은 지구가 유일할까요? 태초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인류는 행성 밖으로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지구 다음으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큰 화성을 탐사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는 “화성에 소금물 개천 형태로 액체 상태의 물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앞으로 2년간 화성의 생명체 흔적을 찾는 임무를 맡은 퍼서비어런스 (출처: NASA)

이에 지난해 여름, 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를 우주로 쏘아 올렸습니다. 올해 2월. 7개월의 항해 끝에 화성에 도착한 퍼서비어런스는 화성의 암석과 표본 채취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됐습니다. 인간보다 먼저 화성에 첫발을 디딘 탐사 로버는 대체 무엇일까요?

탐사 로버(rover)란 행성 또는 위성의 자원과 환경을 채집, 분석하는 지능형 로봇입니다. 고정 착륙선과 달리 행성 표면을 주행할 수 있어 ‘탐사차’라고도 불리는데요. 초기의 탐사 로버는 자동차와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달로 떠난 자동차, 루나 로버

초기 우주 개발은 달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출처: NASA)

초창기 우주 탐사는 달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무중력인 우주 공간과 달리 달은 지구 중력의 1/6의 중력이 작용하는데요. 약 100kg에 달하는 우주복 무게가 우주 비행사들의 활동에 제약을 걸었습니다. 이 탓에 단순히 걷기만 해도 엄청난 체력이 소모됐다고 합니다.

아폴로 15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를 위해 제작된 루나 로버 (출처: NASA)

그래서 개발된 것이 월면 주행차, 즉 루나 로버(Lunar Rover)입니다. 루나 로버는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유인 로버로 자동차 기술이 다수 적용됐죠. 미국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 모터스(GM)’가 바퀴, 모터, 서스펜션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시속 35km의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루나 로버는 우주 비행사의 두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주 비행사의 행동 범위는 넓어졌으며 암석 표본의 운반 능력 역시 증대됐습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후 유인 로버는 서서히 종적을 감췄습니다. 달 탐사 열기가 식으며 우주로 사람을 내보내는 일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인 우주 탐사 시대에는 실용적인 궤도 위성 발사가 경쟁의 주축으로 떠올랐는데요. 2020년을 기점으로 우주 탐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주 모빌리티의 시대를 열다

스페이스 X의 첫 민간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곤 (Crew Dragon)’ (출처: 스페이스 X)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소유한 스페이스 X의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으로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입니다. 스페이스 X는 상업 우주 개발과 인류의 화성 이주를 목표로 2002년 설립됐습니다. 민간 기업 최초로 액체 연료 로켓 발사 성공은 물론 재사용 로켓 발사 후 착륙 성공 등 숱한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우며 민간 주도 우주 산업 시대를 상징하는 기업이 됐죠.

스페이스 X의 사업 순항으로 우주 산업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정부나 기관이 기술 개발을 주도했던 과거와 달리 민간 기업의 참여가 늘어난 것인데요. 이에 자동차 브랜드의 탐사 로버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지형에 따라 걸어 다니는 로봇으로 변신이 가능한 ‘타이거 x-1’ (출처: 현대자동차)

지난 2월, 현대자동차는 미래 모빌리티 ‘타이거(TIGER) X-1’을 공개했습니다. 4개의 다리와 바퀴가 달린 타이거는 보행과 주행이 모두 가능합니다. 이에 장애물이 있는 험지에선 사족 보행을 하고 평지나 속도를 내야 할 땐 사륜구동 자동차로 변신해 빠르게 이동합니다. 특히 네 바퀴가 개별적으로 동작하므로 전진과 후진, 다양한 방향의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죠.

 

현대자동차 산하 미래 모빌리티 담당 조직 ‘뉴 호라이즌스 스튜디오’가 개발에 참여 (출처: 현대자동차)

또한, 일반 차량으로는 어려운 다목적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360도 초음파 센서와 지형 감지 패널 등 센서 기술이 추가됐습니다. 이에 과학 탐사나 연구, 오지로의 상품 배송이 가능한데요. 이들은 ‘미래에 보다 발전된 타이거가 지구를 넘어 달이나 다른 행성 표면을 탐험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밝히며 우주 진출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한편, 처음부터 행성 주행을 목표로 모빌리티를 개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도요타는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함께 자율주행 로버 개발에 나섰습니다.

도요타가 공개한 루나 크루저 콘셉트 (출처: 도요타)

루나 크루저(Lunar Cruiser)로 불리는 이 차량은 오픈카 형태의 기존 월면차와 달리 SUV로 제작됩니다. 우주선처럼 내부에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형태에 변형을 준 것이죠. 개발에 성공한다면, 우주복 없이 이용이 가능한 최초의 월면차가 됩니다. 엔진은 수소로 동력을 얻는 FCV 기술이 적용된다고 하는데요. 완성된 월면차는 오는 2030년 미국의 로켓에 실려 발사될 예정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블루오션, 우주!

자동차 브랜드는 매년 색다른 모빌리티 콘셉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수소차, 자율주행차, 개인용 비행체 등 개발 의지를 드러낸 사업만 해도 수 가지에 달하죠. 하지만 그중에서 실현된 것은 극히 일부입니다.

우주 산업의 전망이 밝다고는 해도 당장의 수익성이 낮은 만큼, 사업의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개발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건, 우주 산업이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뜻이겠죠?

스페이스 X가 세운 최초의 기록은 발사체에 한정됐습니다. 즉 모빌리티 영역에선 아직 승산이 있다는 얘기죠. 앞서 살펴보았든 탐사 로버는 자동차 기술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기술 난도가 높은 만큼, 입증만 한다면 단숨에 산업을 장악할 수 있죠. 비록 실패하더라도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에 자동차 브랜드의 우주 모빌리티 개발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입니다.

2018년, 테슬라가 우주로 보낸 전기차 ‘로드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당황하지 마세요 (Don't Panic)’. 이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나온 구절이기도 한데요. 언젠가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가 열리길 고대하며 이들의 도전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