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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다 쓴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가능할까?

이제 도로에서 파란색 번호판을 붙인 전기차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기준 국내에만 8만 대의 전기차가 팔렸고, 꾸준히 보급률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2025년에는 1,200만대 이상의 전기차가 전 세계 도로를 누빌 전망입니다. 높은 보급률에는 저렴한 유지비용과 빠른 가속, 소음과 진동이 없는 주행환경도 한몫을 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죠. 여전히 높은 차량 가격에 충전에 걸리는 시간이 길고 배터리 효율이 떨어지고 히터를 켜야 하는 겨울에는 주행가능 거리가 짧아집니다. 또한 사고에 따라 꽤 비싼 수리 견적이 나오기도 하죠. 전기차용 배터리 가격이 아직 비싸기 때문입니다. 또한, 배터리와 관련된 장기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영원할 수는 없는 전기차 배터리

내연기관 자동차의 엔진은 수명이 있습니다. 물론 이제 기술이 좋아져 관리만 잘해준다면 몇십 만km는 충분히 달릴 수 있죠. 

그렇다면 내연기관차의 엔진 역할을 하는 전기차 배터리는 어떨까요? 최신 배터리라면 10만km 이상 달려도 배터리 성능의 85% 이상 유지됩니다. 하지만 20만km를 주행하면 초기 성능 대비 80% 혹은 그 이하로 떨어집니다.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면 주행거리가 줄어들고 충전 속도도 느려지며, 가속력을 포함한 주행성능이 함께 떨어집니다. 

▲ 카누의 전기차 배터리 이미지(출처: 카누 홈페이지)

그래서 이 정도 주행거리가 되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죠. 평균적으로 1년에 2만km를 주행한다면 10년입니다. 당연히 비용도 많이 듭니다. 실제로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엔진은 차량 가격 중 20~30%를 차지하지만, 전기차 배터리는 40% 이상을 차지하니까요.

또한 엔진을 완전히 교체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배터리는 전체를 교환해야 하므로 비용이 더 많이 듭니다. 만약 사고 때문에 배터리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면 차량에 따라 다르지만 몇천 만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폐배터리의 잔존가치에 대한 비용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폐배터리는 의외로 가치가 높은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전기차 폐배터리는 유독물질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유독물질 지정고시(제2018-28호)에서 친환경차 폐배터리를 산화코발트, 리튬, 망간, 니켈 등을 1% 이상 함유한 유독물질로 분류했습니다. 친환경차로 알려진 전기차의 배터리가 유독물질이라니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분류되어 있으니 폐배터리가 유출되어 환경을 오염시킬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도 비슷한 상황이다 보니 전기차 제조사나 배터리 공급 업체들은 교체되고 남은 폐배터리의 재활용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 분야가 중요한 이유는 2012년 중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는데, 조만간 수명이 다된 폐배터리가 다량으로 쏟아질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미 여러 전기차 제조사와 배터리 공급 업체들은 폐배터리의 70~80%는 재활용 과정을 거쳐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 희귀 금속류를 추출해 재활용하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기차 보급률이 올라갈수록 이런 재활용은 더 각광받을 전망입니다.


가장 높은 활용성은 전력 공급 장치 

폐배터리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전혀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폐배터리는 자동차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지만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활용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가정이나 건물의 ESS(Energy Storage System)입니다. 

전체 용량의 70~80% 밖에 남지 않은 배터리도 야간에 심야전기나 태양광으로 충전해 집안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자동차의 경우 순간적으로 높은 출력을 방출해야 하지만, 가정용 가전제품이 필요로 하는 전력이 자동차만큼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국외에서는 소비전력이 높은 에어컨까지 사용할 수 있는 ESS 제품이 많습니다. 아울러 가정보다 전력 소모가 높은 빌딩이나 대형 건물의 경우는 ESS가 필수입니다. 정전되었을 때 비상구의 유도등을 점등시키는 것은 물론 여러 상황에서 비상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의 ESS 제품은 니켈 카드뮴, 납산전지를 아직까지 많이 사용합니다. 이런 배터리들은 에너지 밀도가 낮기 때문에 크기가 클 수밖에 없는데,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라면 ESS의 크기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전기차인 코나의 배터리 하나로 3~4층 규모 건물의 전력 소모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건물의 평균 전력 소모가 60~70kW 정도인데 코나 전기차의 배터리 용량이 64kW 정도이기 때문이죠. 일반적인 4인 가족이라면 일주일 정도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량입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전기차로 차박을 즐기는 분도 많죠. 아울러 ESS는 불규칙적이고 단속적으로 생산되는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 시스템으로 생산된 전력을 저장할 수 있고, 출력 변동을 최소화시켜 전기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국내외 ESS 개발 및 활용 현황

▲ ESS는 신재생에너지 시대의 효율적인 에너지 활용을 위해 필수적이다

먼저 삼성 SDI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ESS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2016년에는 중국의 선그로우사와 티벳고원에 14MWh 규모의 ESS와 13MW급 태양광 발전소를 연계한 친환경 자급자족 전력체계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이 지역은 전 세계에서 ESS가 설치된 지역 중 가장 높은 고도이며 평균 기온 영하 5℃에서 최대 영하 40℃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기후 환경이기도 합니다. 

LG화학은 지난해부터 전기차 폐배터리를 활용한 ESS 장치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LG화학의 배터리는 르노삼성자동차와 MOU를 체결하여 서울시 택시 배터리팩 공급 특약에 따라 교체된 배터리를 사용합니다. LG화학은 조만간 전기차 충전소용 ESS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SK 이노베이션은 현대기아자동차와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한 신사업 발굴을 위한 협력을 진행 중입니다. 두 회사는 앞으로 리스와 렌터카의 전기차 배터리를 판매하거나 배터리를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비롯해 ESS 등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전기차 배터리로부터 리튬, 니켈, 코발트 등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금속을 추출하는 사업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닛산의 전기차 배터리(출처: 닛산 UK)

국외는 국내보다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전기차가 많고 그만큼 폐배터리의 숫자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미 ESS를 이용해 대규모 시설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회사도 있습니다. 지난 2010년, 양산형 전기차를 가장 먼저 만든 닛산입니다. 닛산은 1세대 리프에 사용되었던 폐배터리 148개로 거대한 체육관에 필요한 전력을 감당하는 ESS 시스템을 만들었고, 체육관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해 전력을 생산합니다. 이 체육관은 네델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있는 Johan Cruijff ArenA입니다. 줄여서 암스테르담 아레나로 불리기도 하죠. 

배터리의 개수가 많은 이유는 지붕 위 태양광 패널이 만들어내는 전기의 용량이 3MW(메가와트)나 되기 때문입니다. 주차장에 전기차가 있다면 이 차량의 전력을 이용할 수 있는 V2G(Vehicle to Grid) 시스템도 갖춰져 있습니다. 아울러 인근의 Ziggo Dome과 AFAS Live와 같은 공연장까지 전기를 공급합니다.

▲전기차에 남은 전기를 뽑아 쓴다?! 돈 되는 V2G 기술


전력 저장 장치가 끝은 아니다

전기차에서 떼어낸 폐배터리는 전력을 저장하는 ESS로 활용된 후 분해되어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등의 희귀 금속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화학기업인 뒤젠벨트는 배터리 구성요소의 96%를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물론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자동차 회사도 있습니다. 도요타 역시 ESS로도 사용할 수 없는 배터리를 모아 금속원료를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수된 원료들을 이용해 다시 새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데 이 경우 전기차 배터리 생산 비용을 30~60%까지 낮추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아직 희귀 금속을 추출할 수 있을 만큼 오래된 배터리가 많지 않지만 전기차용 배터리의 가격은 차츰 낮아질 전망입니다.


자동차 회사 대신 에너지 회사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는 에너지 기업이 될 것이라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전기차의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의 움직이는 발전소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 폐배터리를 이용해 ESS를 만들어 판매하고, ESS로도 활용할 수 없는 폐배터리는 희귀 금속 원료를 뽑아내 다시 배터리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닛산과 테슬라를 비롯한 자동차 회사들은 태양광 발전을 접목시킨 재생 에너지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전기차가 더 많아져야겠죠? 서울시는 2025년까지 공공부문의 모든 경유차를 퇴출시키기로 했고, 해외에는 내연기관 차량의 제조와 판매까지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국가도 있습니다. 정책과 인식 변화의 영향으로 앞으로 전기차는 물론 친환경 자동차가 더 많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참고 자료

▲닛산(https://www.nissan.co.uk/)

▲삼성SDI(https://www.samsungsdi.co.kr/)

▲카누(https://www.canoo.com/)